복잡한 관광지를 벗어나서 자연과 도시가 만나는 그 경계선을 걸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익숙한 지도 대신 발길 닿는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면, 예상치 못한 풍경과 마주칠 수 있습니다. 이 도시에는 단순한 ‘공원’을 넘어, 하나의 산책로이자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녹지 공간들이 숨어 있습니다.
풀 내음이 가득한 정원, 호숫가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길, 사람들이 멈춰 서는 벤치 하나에도 그 도시만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아래 소개할 다섯 곳은 모두 도심 속에 있으면서도 잠시 ‘도시 바깥’ 같은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곳들이에요.
1. 리젠트 파크 (Regent’s Park)
도심 속에서 가장 구조적으로 아름다운 공원. 넓게 트인 잔디밭과 함께 정원, 분수, 호수, 장미정원이 테마별로 나뉘어 있어 걷는 재미가 풍부합니다. 영국 왕실 소유의 ‘로열 파크’ 중 하나로, 19세기 초 리젠트 왕자를 위해 설계된 네오클래식 풍경이 특징이에요. 특히 이너서클 가든과 로즈 가든(Queen Mary's Gardens)은 계절마다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며, 5-6월에는 400여 종의 장미가 피어나는 절경을 이룹니다.
- 추천 산책 동선: 리젠트 파크역 – 이너서클 가든 – 로즈가든 – 보트하우스 인근 호수길
2. 세인트 제임스 파크 (St. James's Park)
버킹엄 궁전 바로 앞, 영국의 중심에 위치한 역사 깊은 공원. 제임스 1세가 사슴사육장으로 사용하던 곳에서 시작된 이 공원은 왕실의 '정원' 같은 역할을 하며, 정치와 자연이 만나는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호수 위에 떠 있는 펠리컨은 1600년대부터 전통처럼 이곳을 지켜오고 있으며, 근처에선 근위병 교대식을 마주치는 뜻밖의 장면과 마주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중심가와 달리, 이 공원만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 잠시 숨을 고르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입니다.
- 추천 산책 동선: 버킹엄 궁전 앞 – 다리 위 조망 – 말뫼로드 – 더 몰(The Mall) 따라 걷기
3. 홀랜드 파크 (Holland Park)
작고 조용하지만 런더너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비밀 정원' 같은 공간. 특히 중심부의 교토 가든(Kyoto Garden)은 분수와 물고기, 단풍나무와 돌다리가 어우러진 일본식 정원이 있어 인생샷 명소로도 유명합니다. 도심 속에서 동양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고, 정원 외에도 현대 조각공원과 생태정원, 다람쥐가 뛰노는 울창한 숲길까지 다양하게 구성되어 단시간 산책에도 작은 여행처럼 느껴지는 공원입니다.
- 추천 산책 동선: 홀랜드 파크역 – 교토가든 – 조각공원 – 숲길 산책 후 하이스트리트 켄싱턴 방향으로 이동
4. 하이드 파크 (Hyde Park)
런던 최대의 공원이자, 그 자체로 ‘도시 속 숲’ 같은 존재. 마치 센트럴 파크처럼 런던 중심을 가로지르는 이 공원은 피크닉, 조깅, 자전거, 승마까지 가능한 복합형 녹지 공간입니다. 이곳의 상징적인 공간인 스피커스 코너(Speakers’ Corner)는 누구나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시민 자유 공간으로, 영국의 민주주의 정신이 살아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서펜타인 호수를 따라 걸으며 백조와 오리떼를 바라보는 산책은 계절과 관계없이 늘 평화롭습니다.
- 추천 산책 동선: 마블아치 – 스피커스 코너 – 호수 따라 서쪽으로 – 켄싱턴 가든 연결
5. 바터시 파크 (Battersea Park)
템즈강 남쪽, 여행자들 사이에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숨은 명소’. 넓은 호수와 자연 숲길, 아이들 놀이터, 카페, 야외 갤러리까지 갖춘 복합 커뮤니티형 공원입니다. 특히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는 피스 파고다(Peace Pagoda)는 전통 불교 양식의 건축물로, 영국 한복판에서 느끼는 이국적인 인상을 깊게 줍니다. 최근 재개발된 바터시 파워스테이션과 연결해 하루 코스로 계획해도 좋고, 사람이 적어 혼자 조용히 걷고 싶을 때 찾기에도 좋은 공간입니다.
- 추천 산책 동선: 바터시 파크역 – 피스 파고다 – 호숫길 – 강변 산책로 – 바터시 파워스테이션
걷는다는 건, 도시를 천천히 들여다본다는 것
산책은 단순한 이동이 아닙니다. 시간을 덜어내고, 생각을 정리하며, 그 공간의 분위기를 천천히 따라가는 일입니다. 눈에 띄는 명소보다도 그 사이를 잇는 길 위에서 마주치는 풍경들이 종종 더 오래 기억에 남기도 하죠. 공원은 단순한 녹지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숨결과 이야기, 역사가 깃든 살아있는 공간입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그 도시가 내게 속삭이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
관광지를 조금 덜 보고, 걷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보세요. 걸을수록, 도시의 매력은 더 깊이 느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