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국인들처럼, 일요일에는 선데이 로스트

by curatedpath 님의 블로그 2025. 6. 12.

접시에 담긴 영국 전통 요리 선데이 로스트. 구운 고기와 그레이비 소스, 으깬 감자, 채소, 로즈마리 장식이 어우러진 모습.
영국인들이 한주를 마무리하면서 가족과 함께 일요일에 먹는 선데이 로스트.

여행하다 보면 하루쯤은 바쁘게 움직이기보다 천천히 머물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그게 일요일이라면, 망설이지 말고 동네 펍으로 향해보세요. 영국의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일요일 점심은 선데이 로스트(Sunday Roast)와 함께하는 게 가장 영국 답습니다.

고소한 고기 굽는 냄새가 골목 사이로 퍼지고, 창밖 테이블에는 가족 단위 손님이 하나둘 모입니다. 조용한 펍 안을 따뜻한 접시들이 채우기 시작하면, 비로소 이 도시의 일요일 분위기가 제대로 무르익는 걸 느끼게 되죠.

사실 관광지보다 이런 일상 속 장면에서 오히려 런던을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되는 순간이 많습니다. 누군가의 익숙한 주말 루틴 안에 스며드는 것, 그게 바로 진짜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요?

느긋하게 시작되는 일요일의 공기

일요일 아침의 런던은 평일과는 다른 속도로 흘러갑니다. 이른 출근길 인파도, 북적이는 지하철도 없습니다. 늦게 일어난 현지인들은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거나 근처 공원을 산책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조깅을 하거나 반려견과 함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거리에 약속이나 한 듯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동네 주민들이 삼삼오오 펍으로 향하고, 자리가 빠르게 채워지죠. 바로 ‘선데이 로스트’가 준비되는 시간입니다. 이때부터 펍은 마치 한 주의 중심이 된 듯 활기를 띱니다. 간단한 음료 한 잔과 함께, 긴 점심시간을 오롯이 누리는 문화가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선데이 로스트란? 영국인의 일요일 정찬

선데이 로스트는 본래 중세 영국 가정에서 시작된 전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요일 아침 교회 예배를 마친 후, 가족이 모두 모여 하루 중 가장 풍성한 식사를 함께 나누던 문화에서 비롯됐죠. 이 전통은 세기를 지나 지금까지도 이어지며, 많은 영국인에게 여전히 의미 있는 주말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선데이 로스트는 보통 소고기나 돼지고기, 치킨 중 하나를 메인으로 선택하고, 바삭하게 구운 감자와 당근, 파스닙 같은 채소,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요크셔푸딩(Yorkshire Pudding)과 그레이비소스가 곁들여집니다.

이 조합은 하나의 접시 안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단순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깊은 맛을 전합니다. 특히 바삭하면서도 촉촉한 요크셔푸딩과 촉촉한 고기, 짭조름한 소스가 입 안에서 어우러지는 순간, 입안에서 그 다채로운 조화로움을 느끼며 피곤했던 한 주를 싹 잊게 됩니다.

이 요리는 단순한 ‘식사’ 그 이상입니다.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이 일요일 점심은, 영국인의 문화와 정서가 담긴, 조용하고 의미 있는 주말의 마무리입니다.

펍에서 이 메뉴는 보통 한정된 시간에만 제공되며, 특히 인기 많은 펍은 일요일 점심에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관광객뿐 아니라 동네 주민들도 대거 몰리는 시간이기 때문에 미리 예약을 해두는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특히 12시에서 2시 사이에는 대부분 만석입니다. 런던에서 유명한 펍일수록 한 주 전 예약이 기본이기도 하니, 일정이 확정됐다면 빠르게 예약부터 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여행 중 하루쯤은 ‘그들처럼’

런던에서의 일요일, 꼭 바쁘게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가며, 현지인처럼 여유로움 속에서 한 접시의 따뜻한 음식을 천천히 음미해 보세요. 그 여운은 어떤 명소보다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지도 모릅니다.

꼭 유명한 곳이 아니어도 됩니다. 동네의 오래된 펍이나 조용한 골목 끝 작은 레스토랑도 충분합니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창가 자리에서 바라보는 거리 풍경, 그리고 선데이 로스트 한 접시가 만들어내는 조용한 만족감이 여행자의 일요일을 아주 영국 답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여행 중 일요일에는 런더너처럼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꼭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따뜻한 식사와 조용한 오후만으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여행의 한 장면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영국에서 가장 그리워지는 순간은 바로 이런 여유로움일지도 모릅니다.